대전은 밤에 힘이 붙는 도시다. 유성의 온천 냄새가 은근하게 감돌고, 갑천변 바람이 열기를 식히는 사이, 신탄진의 오래된 공장 불빛과 둔산의 유리 타워들이 각자의 박자로 반짝인다. 이 도시의 야심한 시간은 정해진 동선이 없다. 다만, 맛있는 요리와 적당한 술잔, 그리고 사람 냄새가 흐르는 자리가 있다. 대전 야시장은 그 중심을 잘 잡는다.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와 푸드트럭, 구석구석 파고든 노포, 골목 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무작정 걸어도 좋지만, 더 알차게 즐기려면 계절과 요일, 동선의 리듬을 알고 움직이는 편이 낫다. 아래 코스는 업무 마치고 합류하는 평일 밤, 주말의 느긋한 밤, 비 오는 날의 변주까지, 실제로 다녀보며 다듬은 흐름들이다.
밤을 여는 장소, 선택의 기준
야시장은 늦을수록 콘셉트가 뚜렷해진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인기 메뉴가 동나는 건 대전도 마찬가지다. 시작점은 크게 둘 중 하나로 잡는다. 갑천변을 낀 원도심 라인, 혹은 둔산과 탄방 쪽 신도심 라인. 차를 가져왔다면 과감히 내려놓을 곳을 먼저 정해야 한다. 원도심은 중앙로역 주변 공영주차장과 스카이로드 인근이 무난하다. 둔산은 갤러리아타임월드 주변 주차장이나 은행동 지하주차장 쪽이 접근성이 좋다. 대전 버스 노선은 심야 배차가 자주 끊기니, 막차 시간과 대전도시철도 마지막 열차 시간을 체크해 두면 귀가가 수월하다.
야시장은 유동 인구가 몰리는 토요일 밤 8시 이후에 가장 활기가 붙는다. 다만 그 시간대에는 대기와 재료 소진이 잦다. 인파를 피하려면 저녁 6시 30분쯤 가볍게 한 잔을 시작하고, 8시 즈음 야시장 포인트를 휩센 뒤 10시 이후 골목 바로 빠지는 흐름이 안정적이다.
원도심 라인: 중앙시장 야시장과 골목 바의 호흡
대전의 밤을 처음 보여주려면 중앙시장 일대를 고른다. 오래된 간판과 새로운 네온이 뒤엉킨 풍경이 살아 있다. 중앙시장 야시장은 규모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설렁설렁한 날도 있지만 핵심은 항상 같다. 기름 냄새와 철판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이 만든 작은 트렌드.
시장 안쪽에서 나는 매운 양념 냄새가 식욕을 깨운다. 첫 잔은 가벼워야 한다. 탁주 한 사발이나 라이트 라거를 고르고, 온도는 4도에서 6도 사이가 좋다. 너무 차갑게 마시면 곧바로 매운 음식과 부딪히며 혀가 둔해진다. 고기 위주의 포차라면 불 맛이 강한 꼬치와 양념 닭강정을 2인 기준 1 인분만, 과하지 않게 주문한다. 처음부터 과식하면 이후 술의 결을 놓친다.
중앙시장 인근에는 노포 막걸리집이 여럿 숨어 있다. 30년 넘은 집들은 의외로 메뉴가 단출하다. 파전, 두부김치, 계란말이 정도. 파전은 바삭함보다 기름의 온도가 관건이다. 갓 부쳐낸 파전은 막걸리의 미묘한 산미와 기름맛을 부드럽게 잇는다. 750 ml 병 기준으로 두 명이 한 병을 나누고, 다음 잔은 굳이 같은 술로 가지 않는다. 시장에서 나왔으면 향이 선명한 소주보다는 과일 향이 약한 하이볼이 좋다. 시장의 냄새가 옅어지고 도시의 밤 공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엔 탄산감이 페이스를 정리한다.
골목 바는 선택지를 두세 곳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 낫다. 특정 바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궁금하더라도, 줄이 길면 미련 없이 다음 곳으로 갈 준비를 한다. 원도심 바의 장점은 바텐더가 손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점이다. 취향을 정확히 말하면 기본기는 보장된다. 도수 40도 위스키 베이스를 원하지만 피로한 밤이라면 스플릿 베이스로 도수를 낮춰 달라고 요청한다. 레몬은 과해지기 쉬우니 향만 얹어 달라는 식으로 디테일을 조절하면 리듬이 무너지지 않는다.
둔산 라인: 회사원 밤의 정석, 깔끔하게 마시는 코스
둔산과 탄방 쪽은 동선이 직선적이다. 퇴근길 셔츠 차림이 많은 곳이라 첫 잔부터 세련된 분위기를 원한다면 이쪽이 맞는다. 은행동 먹자골목은 언제든 분주하다. 초저녁엔 가벼운 생맥주 한 잔과 얇은 피자 혹은 얇게 저민 편육으로 시작한다. 고소한 지방이 라거의 탄산과 만나는 구간에서 과음의 신호가 켜지지 않도록, 소금이나 겨자 대신 레몬 제스트를 살짝 더해 달라고 해본다. 의외로 카운터에서는 흔한 요청이다.
둔산의 이자카야는 가격대와 퀄리티 편차가 큰 편이다. 제대로 하는 집은 사시미의 칼질이 깔끔하고, 니혼슈 잔술을 주문할 때 쌀 품종이나 세이미부아이 설명을 덧붙여 준다. 잔술은 90 ml에서 120 ml가 적당하고, 한 번에 두 잔을 시키지 말고 음식과 호흡에 맞춰 한 잔씩 교차한다. 튀김류는 2차 이후에 먹으면 무겁다. 오히려 초저녁 소금구이 꼬치를 두세 개로 끊는 편이 그날 밤 전체의 컨디션을 살린다.
세 번째 잔은 하이볼이 좋다. 둔산은 얼음 상태가 좋은 바가 많다. 투명한 직육면체 얼음은 희석 속도가 느리고, 탄산이 덜 죽는다. 가니시는 간단할수록 좋다. 림 솔트는 고수를 싫어하는 동행에게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으니 피한다. 음악이 너무 큰 바는 대화가 힘들다. 그럴 땐 복층 구조나 안쪽 라운지 좌석을 먼저 본다. 스태프에게 소리 간섭이 덜한 자리를 부탁하면 대부분 배려해 준다.
유성과 온천 냄새, 야식의 타이밍
유성온천 쪽은 밤 공기부터 다르다. 따뜻한 수분이 퍼지는 동네에서 술을 마시면 속이 비교적 편하다. 다만 관광지 상권 특성상 가격 대비 만족도가 천차만별이다. 요일을 택해 움직이자. 금요일은 외지인까지 겹쳐 북적이니 목요일이나 일요일 밤이 온도차가 덜하다. 온천 수증기 냄새가 은근하게 감도는 거리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로 첫 입을 적시고, 소주 반 잔 정도에 매운 족발을 소량 주문한다. 느끼한 안주보다 매콤한 안주가 이 동네와 어울린다. 단, 매운맛은 계단식으로 올려야 한다. 처음부터 불족발로 달리면 그날 밤의 섬세한 향은 대부분 사라진다.
유성의 골목 포차는 유행을 잘 타지 않는다. 메뉴는 늘 있다. 계란말이, 버터감자, 마른안주, 홍합탕. 홍합탕은 그날 조업 상태에 따라 국물 차이가 크다. 국물이 탁하면 다시마 향이 앞서고, 투명하면 생강향이 미묘하게 감돈다. 투명한 날엔 소주가, 탁한 날엔 막걸리나 살짝 단 니혼슈가 어울린다. 많이 마시지 않아도 배가 찬다. 이때 야식 타이밍을 억지로 당기지 말자. 온천 거리의 늦은 야식은 산책으로 공간을 바꾼 뒤 먹어야 새로워진다.
푸드트럭과 포차, 무엇을 고를 것인가
대전 야시장의 푸드트럭은 메뉴가 잦게 바뀌고, 사장님 스케줄에 따라 출몰한다. 선택은 결국 현장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실패 확률을 낮추는 기준은 몇 가지 있다. 조리 대기열이 짧아도 손질이 깔끔한 곳을 택한다. 도마 위가 정리돼 있고, 주문과 서빙 동선이 분리돼 있으면 완성도가 높다. 불맛을 내는 메뉴는 바람이 부는 밤에 맛이 뚝 떨어진다. 냄비 요리나 묵직한 소스류가 날씨에 덜 민감하다.
포장마차에서는 늘어지는 대기가 있다. 이럴 땐 포차와 트럭을 샌드위치 하듯 오가는 방식이 유리하다. 포차에서 주문을 넣고, 옆 트럭에서 간단한 꼬치나 덮밥을 포장해 와 나눠 먹는다. 물론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기본 예의다. 서로 아는 사이라면 웃으며 허락하는 편이고, 아닌 경우엔 자리만큼은 지켜 달라는 요청도 있다. 주인장이 무심히 건넨 반찬 하나가 그날 밤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 드물지 않다.
술종의 흐름, 역주행하지 않는 법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순서를 안다. 막걸리로 시작했다면 위스키로 급격히 튀지 않는다. 라거에서 에일로 넘어갈 땐 홉의 향이 튀지 않도록 사이에 살짝 달큰한 잔을 둔다. 소주는 브랜드보다 컨디션이 좌우한다. 얼음이 좋지 않은 바에서는 스트레이트 위스키를 고집하지 말고, 물비율 1 대 1의 하프록으로 고쳐 마신다. 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속이 편하다.
음식은 지방과 산미의 등락으로 연결한다. 튀김과 구이를 번갈아 먹는 대신, 찬 요리로 중간을 끊어 주면 다음 잔이 선명해진다. 대전의 야시장은 고기와 튀김 위주라 자칫 느끼해지기 쉽다. 시장 한복판 과일 컵이나 매실청 탄산수 같은 비주류 선택이 술맛을 지켜 준다. 동행이 많을수록 본인이 술 순서를 주도하는 편이 낫다. 각자 취향대로 시키면 상이 난장판이 되고, 결과적으로 아무 술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비 오는 날의 변주
비는 야시장을 반으로 쪼갠다. 트럭과 노상 테이블은 급격히 힘을 잃고, 천장 있는 포차와 실내 바가 살아난다. 이럴 땐 향이 큰 술이 유리하다. 빗소리와 습한 공기 사이에서 맥주의 탄산은 힘을 잃는다. 위스키 하이볼보다 럼 하이볼, 혹은 진 토닉이 더 또렷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감자전과 막걸리 조합이 안전해 보이지만, 비 오는 날은 가스가 약해지기 쉬워서 막걸리의 생기 자체가 죽는다. 병을 고를 때 묵직하게 흔들지 말고 천천히 회전시키듯 섞는다. 과하게 흔들면 탄산이 빠진다.
비 오는 밤엔 이동 동선을 줄여야 한다. 시장 입구에서 포차 한 곳, 실내 바 한 곳, 숙소나 귀가 동선 쪽 야식 한 곳. 삼각형을 작게 만든다. 우산으로 씌워도 젖는 옷이 찬 기운을 올리고, 술이 빠르게 오른다. 식사량은 평소의 1.2배 정도로 잡는다. 뜨거운 국물은 좋은 선택이지만, 과한 짠맛은 다음 날 몸을 붙잡는다. 멸치 대신 다시마와 표고를 쓴 담백한 우동이 더 낫다.
대전답게 마시는 안주 조합
대전은 놀랍게도 빵의 도시로 불린다. 야시장과 빵이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밤 늦게 빵집이 문 닫기 직전 구워낸 하드롤은 다음 주종의 베이스가 된다. 포차에서 매운 어묵을 먹은 뒤, 골목 빵집 하드롤을 하나 사서 바에 들고 가 오일과 소금을 조금 받아 곁들이면, 위스키의 스파이시가 부드러워진다. 바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 소금이나 오일 정도는 흔히 빌려준다. 번거롭다면 근처 마트의 올리브 믹스 한 통으로 대체해도 된다.
시장 표 고기만능소스는 단맛이 강하다. 오피스타 이런 소스에는 홉이 약한 페일 라거보다는 코리앤더나 오렌지 껍질 향이 있는 위트 에일이 잘 맞는다. 살아 있는 탄산이 달큰함을 길게 끌지 않고 끊어 준다. 족발과 보쌈 사이에서 고민할 땐, 그날의 주종을 보고 결정한다. 소주와는 보쌈, 막걸리나 하이볼과는 족발이 더 어울린다. 냄새가 강한 보쌈김치는 첫 잔보다 세 번째 잔쯤에 꺼낸다. 김치의 발효향이 술의 미묘한 향을 덮지 않게 타이밍을 조절하는 셈이다.
동행의 속도를 맞추는 법
야시장에서는 한 명이 앞서가고 한 명이 처진다. 그 간격이 길어지면 서로 피곤해진다. 술잔 크기를 같게 하지 말고, 도수와 속도를 개인별로 조절한다. 빨리 마시는 사람에게는 얼음이 큰 잔을 주고, 천천히 마시는 사람에겐 잔을 작은 걸로 바꾼다. 계산은 모아두되 계산대 앞에서는 짧게 끝낸다. 회식이 아닌 밤에 계산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온기가 식는다.
대화의 주제도 술의 온도와 비슷하다. 초반엔 가벼운 이야기가 좋다. 시장에서 본 사소한 장면, 옷에 튄 양념 이야기가 훨씬 흥을 살린다. 고조되면 자연스레 깊어진다. 취하면 농담이 오해를 부르니, 11시쯤에는 분위기를 한 번 눌러 주는 질문이 필요하다. 다음 잔을 마실지, 차를 마실지, 아니면 걷다가 집에 갈지. 선택지를 줄이고 합의하면, 과음이 줄고 기억이 선명해진다.
코스 예시: 평일 밤 세 줄 시나리오
- 원도심 라이트 코스: 오후 6시 30분 중앙시장 입구 생맥 한 잔과 닭꼬치 2개, 7시 야시장 트럭에서 미니 타코 1세트, 7시 40분 노포 막걸리집에서 파전 반판과 막걸리 1병, 9시 골목 바로 이동해 하이볼 2잔, 10시 30분 스카이로드 쪽 포장마차에서 홍합탕 작은 그릇. 귀가 동선은 중앙로역 마지막 열차 시간에 맞춘다. 둔산 정돈 코스: 오후 7시 생맥 1잔과 편육 소량, 7시 40분 이자카야 잔술 1, 꼬치 소금구이 3개, 8시 40분 바에서 클래식 칵테일 1과 하이볼 1, 10시 탄방 골목 분식집에서 모둠튀김 소량과 맥주 캔 1. 대화가 주인 코스라면 이 흐름이 흔들리지 않는다. 유성 온천 코스: 오후 7시 어묵 국물과 소주 반 병 나눔, 8시 포차에서 계란말이와 버터감자, 막걸리 1병, 9시 30분 온천거리 산책 15분, 10시 바에서 진 토닉 1, 밤 11시 따끈한 우동 한 그릇으로 마무리.
각 코스는 사람 수에 따라 양을 조금씩 조정한다. 두 사람이면 안주를 한 번에 두 개 시키지 않는다. 세 사람이면 첫 집에서만 넉넉히 먹고 나머지는 잔 위주로 간다. 넷 이상이면 주문권을 한 명에게 몰아주고 속도 조절을 그 사람에게 일임한다.
안전과 체력, 그리고 다음 날
대전은 비교적 질서가 있는 밤을 가진 도시지만, 심야에 동선이 길어지면 변수는 늘어난다. 택시는 둔산과 원도심을 오가는 길에서 자주 묶인다. 목적지를 짧게 나누지 말고, 큰 길에서 잡아 직진 동선을 만드는 편이 빨리 잡힌다. 심야 버스는 배차가 길다. 마지막 도시철도 시간은 요일별로 다르니 미리 확인한다.
체력 관리는 고작한 얘기가 아니다. 낮에 물을 1리터 정도는 마시고 출발한다. 술자리 사이에는 미지근한 물을 한 잔씩 넣는다. 공복으로 시작하지 말고, 간단한 견과나 바나나로 바닥을 깔아 둔다. 다음 날엔 무리해서 해장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매운 해장국은 오히려 컨디션을 늘어뜨린다. 대전역 근처의 담백한 칼국수 한 그릇, 혹은 죽 한 그릇 정도가 체력 회복에 빠르다.
지역성의 디테일을 존중하는 태도
야시장은 결국 사람의 자리다. 사진을 찍을 땐 뒤에 있는 손님 얼굴을 가리는 위치를 잡는다. 줄을 설 땐 간격을 붙이고,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트럭에서는 계산과 픽업 동선을 지켜 준다. 포차에서 흘러나오는 동네 이야기, 가게 간판의 나이, 그리고 메뉴의 균형감 같은 디테일이 그 밤을 만든다. 대전의 밤은 과장되지 않는다. 대신 단단하다. 과거와 현재를 같은 테이블에 앉히고, 작은 술잔을 차분히 비운다.
시즌별 추천 포인트
봄에는 갑천변 벚꽃이 야시장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차갑지 않아 야외 테이블의 체류 시간이 늘어난다. 와인 잔을 들고 걷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플라스틱 컵의 향 손실이 크니 과한 향의 와인은 피한다. 라이트 바디의 로제나 오렌지 와인이 그나마 덜 손해 본다.
여름은 땀과 싸움이다. 얼음 상태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얼음이 약한 곳을 만났다면, 차라리 냉장고 온도가 낮은 병맥으로 바꾼다. 소금을 살짝 곁들인 토마토나 오이 절임 같은 간단한 찬안주가 체온을 낮춘다. 짠맛이 혀를 피로하게 만들기 전에 물 한 잔으로 코팅을 풀어 준다.
가을은 대전이 가장 예쁘다. 밤 공기가 가볍고, 기름진 안주가 맛있어지는 시기다. 훈연향을 살짝 얹은 위스키가 이 계절의 공기와 잘 맞는다. 다만 스모키는 금방 피로해진다. 첫 잔으로 가져가지 말고 세 번째 잔으로 옮겨온다.
겨울에는 따끈한 국물이 중심이 된다. 매운탕이나 어묵탕은 술이 빨라지는 부작용이 있다. 국물과 술의 속도를 분리하기 위해, 국물을 떠먹고 나서 1분 정도 쉬는 템포를 유지한다. 야시장에서는 장갑이 필수다. 손이 시리면 술잔도 흔들리고, 음식도 빨리 식는다.
도시를 걷는 속도와 마무리
대전 야시장은 걷는 속도가 곧 취향이다. 한 블록을 5분에 끊는 사람과 10분에 끊는 사람이 만나는 곳에서, 어울리는 밤이 완성된다. 시간을 늘리지 않아도 밤은 길어 보인다. 조급하지 않게 한 잔씩 건넌다. 어느 순간 불필요한 대화가 줄고, 필요한 기억만 남는다. 음악이 잦아들면 집으로 가야 한다. 순간의 과장보다 다음 만남을 담보하는 마무리가 더 가치 있다.
도시는 변한다. 트럭이 자리를 옮기고, 포차의 메뉴가 바뀌고, 노포의 간판이 새로 칠해진다. 그렇다고 야시장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좋은 술과 성실한 음식, 그리고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 그 셋만 지키면 대전의 밤은 늘 너그럽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첫 잔은 가볍게, 마지막 잔은 정확하게. 그 사이에 이 도시가 만든 수많은 빛과 냄새를 차곡차곡 담으면 된다.